철 지난 글을 이제야 읽다가 웃음이 터져 나왔다. 타인의 문구를 인용하여 자신의 글의 논조에 유리하게 난도질 하는 그 글쓰기 방식의 졸렬함이야 필자의 떨어지는지적 수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쳐도, 그의 주장의 골자는 심지어 동정심을 불러 일으킨다. 이윽고 웃음이 터져 나온다. 아아,어쩌면 나는 그를 알게 된 몇 년 전부터, 매 순간 1분 1초, 그를 딱하게 여겼는지도 모르겠다.
단도직입적으로 말해, 이성과직관의 이분이 불가능 함은 이미 18세기에 논의 된 것이다. 그의이성 우월적인 태도는 마치 라이프니치의 단자론을 연상 시키는데, 우리는 조롱의 의미로 그것을 ‘음악적 단자론’이라고 명 해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, 는 웃기는 소리고, 라이프니치에게 누가 되려나. 여튼, 사고 즉, 이성의 시발점에 직관이 있음에 이견의 여지가 없다. 직관 된 무언가를 구체화 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성(혹은 더 미시적으로는 지성)이 필요하며, 그렇기에 칸트의 저 유명한 아포리즘, 즉, ‘직관 없는 이성은 공허하며, 이성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.’라는 말 또한 이해가 되는 것이다. 세상 만물을 바라보는데, 혹은 그에 관하여 사고하는데 필요한 이 메커니즘이 음악을 써 나가는 과정에서 또한 적용 가능함은(아니, 오히려 이 과정만이 존재함은)의심의 여지조차 없다.
글 자체에 대한 반박은 굳이 길어질 이유도 없고, 내가 아니라 몇몇 책만 펼쳐 보아도 자명한 문제이니 더 늘어놓을 이유가 없겠다. 다만, 한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그 글을 실은 소위 ‘아카데미즘의 책임’이다. 한개인의 사고와 그로 인한 텍스트의 졸렬함은 충분히 자주 목격할 수 있는 것이기에 뭐 그러려니 한다. 다만, 그 글이 어떠한 아카데미즘을 통하여 전파되고, 또 사상이 주입 된다면문제는 복잡해 진다. 더군다나 그 주입의 대상이, 아직 자신의사고가 분명치 못한 20대 초반의 학부생 이라면 문제는 더 크다. 웹진이든, 학술지이든, 해외 매체가 텍스트 하나를 싣는데 그토록 신중을 기하는이유가 이 때문이다. 또한 병신 같은 글을 실으면 바로 개망신 당할만한 크리틱(Critic)의 문화가 이 땅의 아카데미즘에 없음도 문제다. 그러면 쪽 팔릴 까봐서라도 글 쓸 때 조심 하거든.
